눈 오는 날

눈이 많이 왔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하루 종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은 없고 눈만 있었다.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용감히 눈길을 헤치고 우체국에 갔지만 눈이 많이 와서 우체국도 문을 열지 않았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다. 눈 덕분에, 좋았다.

누구나 쓰고 있는 자신의 탈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 갈 즈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뿐이다.
하늘 가득 흩어지는 얼굴
눈이 내리면 만나보리라
마지막을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용기와
웃으며 이길 수 있는 가슴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눈오는 날엔.
헤어짐도 만남처럼 가상이라면,
내 속의 그 누구라도 불러보고 싶다.
눈 내리면 만나리라
눈이 그치면
눈이 그치면 만나보리라.

서정윤 시인의 “눈 오는 날엔” 중에서.

눈이 들이친 베란다 문아이들이랑 “거침없이 하이킥”을 봤다. 하루종일 눈 치우는 차들이 분주했다.

이런날은 따뜻한 차 한잔이면 왕이 부럽지 않다.

 

Peggys Cove 가는 길

지난 12월 31일 오후에 Peggys cove 를 다녀왔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여느 날과는 조금은 다르게 보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Peggys cove는 이곳에 살면서 여러번 다녀왔기에 이젠 지겨울 때도 되었건만 그래도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딱히 경관이 수려한 곳은 아니지만 국도를 타고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나는 좋다. 핼리팩스에서 333번 국도를 타고 Peggys cove를 향해 가다가 Prospect 라는 작은 어촌에 잠시 들렀다. 그야말로 작은 어촌이다. 이지역의 파도가 높기로 유명하지만 바위가 방파제처럼 둘러 싸고 있어서 마을로는 큰 파도가 밀려올라오지 않는 히한한 모양세다.날이 추웠는데 장갑 챙기는 것을 잊어서 tripod와 카메라를 들고 바닷가를 다니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여유로 인해 그 추위 마저도 즐거웠다. 다시 prospect를 뒤로하고 10분 더 달리면 West Dover라는 조금 규모가 있는 어촌이 나온다. Peggys cove직전에 있는 어촌이라 식당도 여럿있고 B&B도 몇개 있는 예쁜 마을이다.이곳에서 Peggys cove까지는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지역은 그야말로 바위 덩어리다. 온통 바위다. 해안이 바위고 집들이 바위위에 지어져 있다. Peggys cove입구에 있는 교회당.그 교회당 옆으로 보이는 Peggys cove의 등대그리고 Peggys cove의 풍경들그리고 캐나다 육지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등대 중 하나이면서 사진도 가장 많이 찍인다는 Peggys cove의 등대Peggys cove를 다녀오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넓은 바다와 찬 바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거대한 바위들. 이런것들이 내 마음의 상념을 시원하게 날려 버리기 때문일게다.

찐빵 쪄 먹기

덴버에 살 때는 웬만한 것은 사서 먹었는데 이곳 핼리팩스에 와서는 웬만하면 만들어서 먹는다. 재찬모가 빵만들기를 좋아해서 여러 종류의 빵들을 집에서 만든다. 시네몬 롤, 팥빵, 크림빵, 쿠키, 호떡 등등…거기다가 얼마전 부터는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제법 맛있다. 지난 주에도 두어번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사진이라도 좀 찍어 두어야 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자세한 방법은 나도 모르지만 암튼 사진으로 보면 밀가루에 기름이랑 계란이 들어가고한시간 삼십분 반죽 및 숙성팥 앙꼬 넣고..재인이도 따라하고..찜 솥에 올려 찌고..
좀 지루하지만 기다리면, 찐빵이 완성되고….난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ㅋㅋㅋ

Halifax Farmers’ Market

얼마전 토요일 아침, 핼리팩스 파머스 마켓에 다녀왔다. 다운타운에 간 김에 그 근처에 있는 나의 직장에 가서 잠시 해야할 일들을 좀 해놓고 근처에서 사진 몇장 찍고 Water Front에 있는 Halifax Farmers’ Market으로 갔다. 시간상으로는 파장 할 때가 다 되어가는데도 주차장에 빈곳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가격이 사실 조금 더 비싸기는 하지만 대부분 좋고 싱싱한 것들이다. 딱히 뭘 사러 그곳에 간 것이 아니어서 이곳 저곳 둘러보고 사진찍고, 알이 굵은 계란 한판이란, 야채 조금, 그리고 작은 박 세개를 사왔다. 박은 속을 파 낸뒤 차 컵으로 만들어 사용하려고 사왔다. 핼리팩스 파머스 마켓, 그리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곳에 가면 막 내린 향 좋은 커피를 마시는 듯한 괜한 즐거움이 있다.차 컵을 만들어 사용하려고 사 온 박들.

오매 단풍 들것네

사실 “단풍 들것네” 가 아니라 단풍이 들었다. 아니 이미 지고있다. 샛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겨울 눈 날리듯 흩어져 내린다. 이맘 때면 늘 보던 것들이지만 올해는 더 이뻐 보였고 잡아 두고 싶은 마음 또한 더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아니면 일년을 먼 데서 살다 와서 일까. 비 오늘 날이 잦았던 요며칠, 출퇴근 시간 흐린 차창을 통해 들여다 보는 핼리팩스의 가을은 색깔이 적당히 잘 퍼진 한편의 훌륭한 수채화다.


오랜만에 화창히 갠 토요일 아침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들꽃

얼마전 퇴근길,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늘 길가에서 들꽃들을 보았다. 늘 그곳에 있었을 들꽃들이 그날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보니 어찌나 이쁘던지. 욕심이 생겨 꽃을 좀 꺽어서 도시락 가방에 넣었다. 집으로 걸어 오는 내내 짝사랑 시작한 사춘기 소년 마냥 기분이 좋았다. 투명한 유리잔에 물을 채우고 따온 꽃들을 띄우니 더 이상, 가을 바람에 흔들리기나 하는 그냥 그저 그런 들꽃이 아니었다. 아 이거 왜 시가 생각 나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 김춘수

물컵에 담아 둔 꽃들이 참 이뻐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