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지난 2017년 봄과 여름에 걸쳐 몇주 동안 주일 설교를 통해 종교 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고 관통하는 설교가 있었다. 몇주에 걸쳐서 종교 개혁 당시 상황과 시대적 의미, 그리고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인 나는 그 역사로 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체득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설교라는 형식으로 인해 지식적인 부분의 전달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어지만 또 한편으로는 설교였기에 받을 수 있었던 은혜의 풍성함으로 인해 감사함도 있었다.

그 당시 생각을 메모해 두었는데 오늘에서야 그날의 메모를 이곳에 다시 펴서 적어 본다.

전부터 생각했던것이고 늘 좀 헷갈렸던 부분이 로마서 1장의 의인과 믿음 부분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생각하면 로마서 1장 (갈라디아서 3장)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말씀을 떠올리는데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들을때면 아래와 같은 질문이 늘 생기곤했다.

“바울이 인용한 하박국에서 나오는 ‘의인’과 바울의 인용에서 나오는 ‘의인’은 과연 같은 의미인가?” 라는 질문이다.

사도 바울의 인용으로 나타나는 로마서 1장에서의 바울의 고백적 선포(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서의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 즉 실제적 믿음의 행동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정의 되어지는 의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로마서 3장에서의 인용에 의한 고백 (의인은 없나니)도 1장에서 사용된 의인의 의미가 하나님의 은혜로 정의되는 의인이라는 것을 한번 더 확인시켜주므로 사도바울이 1장에서 사용한 의인의 의미는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이 그 고백적 선포를 인용한 하박국에서 하박국은 불의한 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해지는 심판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하나님은 거기에 대답을 하면서 이말(의인과 믿음)이 나온다.

혹시 하박국에서의 그 의인의 의미는 그 혹독한 시대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어떠해야 함”을 말하는 실제적 (practical)의미의 의인, 즉 실제적인 믿음의 행동들에 의해 정의되는 의인을 말하는것은 아닌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하박국 1장에서 악인과 의인을 말하는데 이는 문맥상 악인을 갈대아 사람으로 본다면 의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읽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박국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흐름은 은혜라기 보다는 불순종이 부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라고 읽힌다. 하박국이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마시라” 구하는 부분이 잠시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하박국에 나오는 의인의 의미는 은혜로 정의되는 의인이라기보다는 실제적 믿음의 행동들에 의해 정의되는 의인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만약 그렇게 두 의인의 의미를 본다면 같은 말이지만 맥락이 달라지는건 아닌가?

즉 은혜에 의해 칭해지는 의인 (바울의 인용)과 실제적 믿음의 행동들로 의해 정의되는 의인(하박국의 기록)…만약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것을 어떤 의미로 인용한것일까?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라는 예수의 말씀도 사실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성경 구절이다. 의인이 은혜로 정의되는 것이라면 이 말씀을 받아 들이기가 상당히 어렵게 된다. 즉 은혜로 정의 되는 의인이라면 예수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누가 복음의 말씀은 예수가 의인을 정의하는 주체가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정의된 의인을 찾는 객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하박국의 의인과 믿음에 대한 말씀이 누가복음의 말씀과 더 합이 맞는 듯 하다.

사도 바울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한 것일까?

사실 난 성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깊이 있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기에 너무 단순하게 성경을 보기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