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끝”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나는 이 책이 물리적 시공간의 끝, 혹은 우주의 마지막 정도를 생각해 보는 책으로 느꼈다. 그러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종말이라는 주제에서 이 책을 시작하고 또 그 끝을 맺는다. 인간에게 모든 동기를 부여해온 원천이 필사, 즉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이라고 말한다.
이책은 특별히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아니 무슨 결론이라는 것을 내릴 수 없다고 계속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극히 환원주의적 입장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저자는 입자로 구성된, 진화와 자연 선택의 산물인 자연과 인간이 빅뱅 이후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우주 앞에서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여러 물리법칙과 천제물리학 이론들을 이용하여 설득한다. 그러나 입자로서의 우주로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는, 존재의 고귀함과 살아 간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면서 이 긴 책의 끝을 맺는다. “우리는 무상하기 그지없는 일시적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짧은 시간은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만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창출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유산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미 우주의 타임라인을 조망한 우리는 그것이 이룰 수 없는 목표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의 입자들이 모여서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단명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연결 관게를 확립하고,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모습인 ‘The Pale Blue Dot’ 을 보면서 우주 앞에서의 인생의 사소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여주는 우주의 크기와 지구의 모습, 그리고 그 지구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The Pale Blue Dot 에서 느끼는 작은 나의 모습과는 사실 비교 조차도 안된다. 이 물리학자는 우주의 운명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로 비유 (1층 올라가는데 시간이 아래층에 비해 10배가 더 걸림) 하면서 1층의 빅뱅, 8층의 최초의 별 (빅뱅 후 1억년), 그리고 현재(우주의 나이 138억년)는 10층에서 몇 계단 더 올라간 상태, 14층은 모든 은하의 디스토피아를 방불케하는 황무지 상태,등으로 우주의 스케일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30층 즉 빅뱅 후 즉 1030 년에는 거의 모든 은하들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물론 30 층 이후의 수학적 계산들도 나오지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시간의 규모다. 저자는 프랑스 작가 Marcel Proust의 말을 인용한다.
“진정한 발견은 낯선 지역을 찾아갈 때가 아니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이루어진다.”
시간의 끝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왔고 또 아마도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가끔은 시간의 끝쪽에서 나를, 삶을, 혹은 세상을 바라 보면서 살아 간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과학 서적, 혹은 과학 철학 서적 같지만 실은 끝이 없는 것 같은 길위에서, 어깨에는 나누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온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 쉼표를 찍고 시간의 끝 쪽에서 내 삶을 돌아 보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