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ton, Ontario 에 다녀오다

킹스턴 (Kingston, ON)은 내가 사는 Halifax로부터 1,500 km 정도의 거리에 있다. 차로 가면 15시간 정도…미국의 Maine주를 거쳐서 가는 길도 있긴 한데 구글맵에 의하면 거리는 60km정도 짧지만 시간은 비슷하게 나온다. 10월초,추수감사절 연휴를 이용해 금요일 저녁에 핼리팩스를 떠나 월요일 낮에 다시 핼리팩스로 돌아오는 1박 4일 일정으로 무리하게 킹스턴에 다녀왔다. 퀘벡주에 들어서서는 킹스턴까지 거의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가게 된다. 세인트 로렌스 강이 Lake Ontario와 연결 되는데 거대한 호수에서 나와서 강의 모양을 갖추고 킹스턴에서 출발하여 그 강이 몬트리얼과 퀘벡시티를 거쳐서 대서양에 이른다. 퀘벡시티를 지나서부터는 강이라기 보다는 대서양의 일부라고 보는게 맞을것 같다.

킹스턴은 캐나다 수도가 오타와로 옮겨지기전 건국 시절의 수도여서 그런지 다운타운의 건물들 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그런 도시다. 인구가 20만이 안되는 작은 도시지만 퀸즈대학교와 캐나다 사관학교가 있고 캐나다 육군 사령부도 킹스턴에 있다. 센인트 로렌스 강에 흩어져 있는 천섬을 유람하는 배들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차를 운전하다보면 하루만에 길들이 금방 눈에 익을 정도로 킹스턴은 작은 도시다. 누구 말마따나 공부하기엔 딱인것 같았다.

퀸즈 대학교는 1841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니 200년이 다 되어가는 유서 깊은 학교며 북미의 많은 대학들이 그러하듯 이 학교도 첨엔 기독교 교단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commerce는 캐나다 최고로 알려져 있고 201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현재 재직중인 이 학교 교수인걸 보면 이공계도 상당히 탄탄한 모양이다. 캠퍼스의 거의 모든 건물은 석조 건물들인데 그런 건축물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학생 대부분이 타지에서 온 관계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숙사나 캠퍼스 주위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재찬이가 퀴즈대학 기숙사로 들어가던 9월초에도 이사짐 옮겨주러 킹스터에 다녀왔지만 그때는 낮시간에 운전했고 3박4일의 일정으로 다녀왔기에 전혀 힘든줄 몰랐는데 이번에는 시간 절약을 위해 밤에 출발하고 거기서도 저녁에 떠났더니 밤운전이 훈련병때 50km 야간 행군하던것 처럼 졸리고 힘들었다. 특히 돌아오는 길의 뉴브런스윅은 지루하기가 정말 최악이었다. 그러나 잠시 걸쳐져 있는 낮시간 운전에서 볼 수 있었던 단풍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탄성을 절로 나오게할 만큼 일품이었다.

돌아온 뒤 나는 피곤에 절어 늘어진 이틀을 보내야만 했을 정도로 그렇게 무리하게 킹스턴을 다녀왔지만 오랜만에 재찬이도 보고 가족이 함께 꼬박 이틀을 같이 보낸 좋은 시간이었다.

Dvorak Cello Concerto

주관적이기는 하나 첼로 콘체르토를 대표하는 몇 작품들이 있다. 고전시대로 올라가면 하이든의 첼로 콘체르토 1번과 2번이 명작으로 남아있고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는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들이 있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2번을 들을 때면 왠지 난 항상 모짜르트를 떠올린다. 왜 그런거지? 낭만 시대에는 슈만의 첼로 협주곡이 있고 19세기말에는 첼로 협주곡의 끝판왕으로 손색이 없는 드보르작의 작품이 있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의 엘가의 그것이 또한 명곡으로 인정받는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는 잘은 모르겠으나 작곡 당시 엘가의 침잠이 느껴지는 듯해서 즐겨들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이유가 요즘은 이곡을 덜 듣게 만드는 것 같다. 명연으로 인정되는 Jacqueline Du Pre의 연주를 들을 때면 그 애잔한 자클린의 인생이 이곡과 겹쳐지면서 왠지 더 슬픈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자클린의 연주는 내게 젊은 사자의 숨결처럼 거칠게 들린다. 그런 거친 활이 이 곡을 더 유명하게 만드는 지는 모르겠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두말 할것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이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거라 그런지 교향곡 9번의 느낌도 나기도하고 또 무겁지만 엘가의 그것처럼 끝없이 떨어지는 무거움은 아닌 뭔가 희망이 보이는  무거움이랄까? 많은 명반들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자클린의 음반과 로스트로포비치의 음반을 주로 듣는데 같은 곡이지만 살짝 다른 느낌? 개인적으로는 로스트로포비치에 손이 더 간다. 20세기 초반에는 카잘스가 있었지만 중후반에는 당연히 로스트로포비치다. 그렇다고 로스트로포비치의 모든 연주가 명연인건 아닌것 같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예로 들자면 난 피에르 푸르니에를 다른 어떤 연주자보다 더 즐겨 듣는다. 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진중함이 좋다. 바하는 왠지 좀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로스트로포비치에게서는 내가 기대하는 그런 진지함 보다는 경쾌함, 가벼움, 빠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글을 시작할 때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들으면서 이곡의 느낌을 적으려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글을 마칠 때 보니 첼로 연주에 대한 두서없는 내 생각의 나열이 되었다. 지식의 짧음이 이토록 슬프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많은 사람들에게 천재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지휘자 로린 마젤 (Lorin Maazel)은 한국에서도 자주 공연을 가졌으며 특히 2008년 평양에서 뉴욕필과의 연주,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앵콜곡 최성환의 아리랑 연주로 인해, 또한 장한나의 스승이기도 해서 한국 사람들에겐 아주 친숙한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흔히들 로린 마젤을 두고 베를린 필을 가지지 못한 천재 지휘자 라고들 평한다. 그러나 그는 사실 베를린 필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처럼 베를린 필 못지 않은 메이저 오케스트라를 다 가졌던 지휘자도 드물다.

내가 가진 음반 중에도 로린 마젤의 LP가 몇장 있다. 그 중 둘은 베토벤 교향곡 5번 녹음이다. 하나는 로린 마젤이 30대 초반에 베를린 필과 녹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50 초반이었던 1981년 비엔나 필과의 일본 공연 실황이다. 특별히 베를린 필과의 녹음은 로린 마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른바 명반으로 알려져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누구나 다 아는 곡이다. 그만큼 많은 음반들이 있고 수많은 위대한 지휘자들의 명반들이 즐비한 곡이다. 나 자신도 카라얀, 번스타인, 아바도, 셀 등의 지휘로 녹음된 여러 음반을 들어왔고 또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직접 듣기도 한다.

며칠전 로린 마젤의 1981년 일본 공연 실황 음반을 들었다. 익숙한 곡이지만 이 음반을 들으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생동감, 음반을 듣고 있지만 공연장에 앉아 있는 듯한 생동감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일본 엔지니어들의 녹음 기술도 한 몫 했겠지만 전체 연주가 전해주는 잘 조절된 발란스, 경중이 분명한 무게감 등을 느끼게 해주는 연주였다. 사실 클래식음악을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은 연주를 듣고 이렇다 저렇다 평할 만큼 세련된 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음반은 분명 나에게 그러한 뭔가를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누구의 지휘처럼 너무 진중하게 들리지도 않지만 또 어느 지휘자처럼 색깔을 너무 입힌것 처럼 들리지도 않는,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하지도 않은, 무게감이 아주 분명한 연주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런 연주가 호감으로 다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들었던 베토벤 5번과는 많이 다른 느낌의 연주였던 것은 분명하다. 새삼 이런 음반을 남겨준 마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제는 음반만 남아있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로린 마젤, (허무하기로 치면 Carlos Kieiber를 빼면 안될 듯.., 2019년 4월 21일 첨언) 그리고 이제는 인생의 말년에 있는 세이지 오자와 선생까지…비록 오역이라고는 하지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음반이다.

Netrebko의 발견

클래식 음악을 들어오면서 나의 듣기 목록에는 주로 교향곡과 협주곡이 주를 이루고 피아노곡 이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이 즐겨 듣는 목록에 자리하며 현악 4중주와 같은 실내악도 간간이 듣는 편이다.

오페라가 클래식 음악에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음에도 오페라에 대한 접근은 왠지 부담스러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부담은 일단 언어에 대한 부담이다. 자막이 물론 있지만 이탈리어 혹은 독일어로 진행되는 오페라는 영어 자막으로 일본 영화를 보는것 과는 비교가 안되는 부담이 있다. 또 하나 느끼는 부담은 진부한 스토리다. 사실 많은 오페라의 시대 배경이 200여년 전이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부터 나온 이야기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파바로티나 도밍고, 또는 바르톨리나 조수미는 워낙 유명하니까 나도 그들의 오페라 아리아 모음곡 수준의 음반은 가지고 있지만 그 아리아들이 실제 나오는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어떤 계기로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연히 2008년의 오페라 갈라 실황 DVD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테너와 바리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네 사람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는데 Netrebko가 소프라노로 나와서 아주 멋진 무대를 선보이다. 노래는 물론 말할것도 없고 과감한 무대 매너와 관객과의 호흡을 멋드러지게 보여준다. 특별히 앵콜 무대는 Netrebko의 끼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관객들-남자 관객에게만-에게 꽃을 하나씩 던지는가하면 악장의 뒤로 가서 그의 귓가에 뭔가 에로틱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무대를 뛰어 다니다 보니 숨이 차서 노래를 이어가기 힘들 때 혀를 낼름 내밀며 귀여운 모습으로 관객의 양해를 구하면 관객들은 큰 박수로 이해한다는 반응을 한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네명의 아티스트가 그 공연에 나오는데 단연코 Netrebko가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내가 본 또 다른 공연은 Netrebko가 수잔나 역으로 나온 모짜르트-피가로의 결혼 (비엔나 필, 아르농쿠르 지휘, 2007년). 이 공연들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은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이 약간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페라도 나같이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즐기면서 듣고 볼 수 있는 장르라는 것. 물론 역을 맡은 각각의 아티스트가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노래 실력을 잘 갖춰야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 공연을 통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긴다면-나의 경우에는 Netrebko-오페라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2012년 12월 19일..아팠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만약에” 그 때 이겼다면 지난 겨울, 그 추웠던 겨울을 그토록 뜨겁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이제 일곱 밤이 남은 지금, 5년전 푹 꺼졌던 마음 한켠에 숨겨두었던 영상을 다시 한번 돌려본다.

httpv://www.youtube.com/watch?v=kDI3JeI0W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