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러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현악의 침잠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건 그 나머지 악장들에서 관악기의 찬란하고 웅장함이 있었기 때문이듯,
인생들의 4악장쯤의 침잠이 아름다운건 그네들의 찬란하고 치열했던 지난 세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Karen Armstron의 Islam 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영국의 종교 역사학자이며 기독교 (카톨릭) 배경을 가진 비교종교학의 권위자라고 한다.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기독교인으로서, 비슷한 인구 비율을 가진 (전세계의 인구의 1/4을 차지) 이슬람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하고 대체 이슬람은 어떤 종교인지, 왜 저들의 종교색은 그토록 눈에 띄는지, 소위 근본주의 이슬람은 대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등의 궁금함이었다. 종교로서의 이슬람에 대해서는 이책에서 다행히 깊이 있게 다루진 않았고 이슬람의 역사 위주로 서술되어 있어서 따라가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사실 종교로서의 이슬람을 책에서 다룬들 그 깊이를 가늠할 능력도 없다. 다만 책을 읽은 후 새롭게 배운것은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 즉 무슬림들의 삶은 단순한 살아감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이슬람 종교를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에 비해 눈에 띌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이다. 행위로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와 비교하자면 이슬람은 오직 그 믿음은 행위로 말미암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때로는 그들의 종교적 행위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요 신앙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무슬림은 사회를 이상적인 이슬람 사회로 만들어 나갈 의무가 있으며, 이는 현실적으로 여러 정부 정책들이 종교의 교리와 떨어질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라고 말한다. 이또한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두고 있는 기독교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는 한 뿌리에서 시작한다. 셋 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말한다. 현재 읽고 있는 책, 미로슬라프 볼프의 “알라”에서 저자인 볼프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하나님은 같다 라는 주제로 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러한 공통점과 근원의 유사함이 있지만 현실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는 요원해 보인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서기 700년 경 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급속한 확장으로 시작해서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로 대표되는 유럽 세력간의 치열한 갈등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18세기 까지 전성기를 이어가던 이슬람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 서면서 서양의 세계 제패로 두 세력간의 균형은 급격히 기울어지고 이로 인해 이슬람 스스로의 고뇌의 여러 결과 중 하나로 원리주의도 등장하게 된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원리주의 이슬람이 모든 이슬람을 대표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일반의 시각은 21세기 현재 절정에 달해 있다. 이것이 오히려 극단적 원리주의 이슬람의 확대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미로슬라프 볼프의 “알라”를 읽는 것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는 요즘이다.

드디어 “한 번” 읽기를 마쳤다. 한 번을 강조한 것은 한 번 읽기를 마치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또다른 이유는 책의 몇몇 부분은 다시 몇번 더 읽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500 페이지를 넘는 두껍고 다루는 스펙트럼도 넓어서 나에겐 짧은 시간에 후다닥 읽어 내려가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을 중심으로 한 현대 신학 비평이라는 짧은 부제목이 말해주듯 다루고 있는 신학의 범위가 19세기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다양한 신학을 커버하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와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과도기를 맞게 되는 기존의 신학적 체계, 18세기와 19세기의 칸트와 헤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 전성기의 슐라이마흐로부터 시작해서 20세기 후반의 복음주의로 마친다. 그러니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인가.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급진주의, 몰트만과 판넨베르크로 대표되는 종말론적 희망의 신학, 해방신학, 카톨릭신학, 설화신학, 그리고 복음주의신학(진보된 근본주의).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들 (폴 틸리히의 내재성, 화이트 헤드의 과정신학)도 있었고 좀 더 깊이 파고 들고 싶은 부분들도 있었다. 특히 판넨베르크가 말하는 모든것을 결정짓는 실재로서의 하나님을 미래로부터 이 세계에 역사하는 신적 장(場), Divine Field와 동일시 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환경적 네트워크 혹은 장으로 보는 것)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격적으로 볼 수 있게 할까라는 도전을 맞게 되지만 나의 생각은 하나님을 반드시 인격적 이미지로만 보면 여러가지 더 많은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부조리가 사실은 하나님을 인격적 이미지로만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오랜 생각이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신학이 변해왔고 지금의 신학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메시지는 과연 “얼마나 온당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된다. 역사-비평적 연구방법과 근본주의 혹은 복음주의적 견지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라는 칼 바르트의 말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닭이냐 달걀이냐를 고민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각 시대마다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명료하게 정립하는 것이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 세계 위에 계시고 이 세계 저편으로부터 오시는 자기 충족적인 분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또한 역사적, 자연적 과정에 관여하면서 이 세계 속에서 활동하시는 창조 세계에 현존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또한 시간적으로 저편, 미래의 시점으로부터 우리의 현재에 참여하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 현재 해방자로 활동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미래의 하나님이 될 수 없기도 하다.
이 책은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요컨대 신학은 20세기의 경험이 내린 판결-땅은 천국이 될 수 없다-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희망의 메세지-“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를 덧붙여야 한다. 저편으로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현재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간의 신학적 균형의 핵심있다.

Alister McGrath의 <Christianity’ Dangerous Idea> 는 일단 읽기가 어렵지 않은 책이다. 종교개혁 직전 무렵부터 20세기까지의 개신교 역사를 보여주면서 각 시대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개신교가 어떻게 그 시대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변화해 왔는지를 아주 쉬운 문체로 잘 전달해 준다. 번역도 아주 매끄러운 것 같다.
제목이 제법 도발적이다.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 라는 책의 제목이만 실은 개신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위험하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루터의 종교 개혁에 바탕이 있다.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가 사제나 교회가 아닌 각 개인에게 있다는, 즉 만인제사장론이 바로 그 위험한 사상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보기에 따라 권위의 부재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변화는 종교개혁 직후부터 수많은 혼돈을 야기했고 칼뱅 이후 개신교의 권위가 정립되는 듯 했지만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사상으로 인해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정치,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 등이 변화해 왔다.
일관된 권위에 의하지 않고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성경을 누구도 해석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이것은 개신교가 가진 태생적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서 위험한 그 사상은 태생적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그럴수 밖에 없긴하다), 혁신하고 개혁함으로서 시대에 맞는 개신교의 모습을 만들어 왔으며 전에 없었던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는 다가올 세대에도 개신교는 지속적으로 혁신함으로 그 모습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 예상한다. 개신교 전체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라 각각의 역사적 사건들의 배경을 깊이 있게 설명하지는 않으며 또 각 시대의 신학 사상을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다만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개신교의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여 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의 의도도 거기에 있는듯하다. 700페이지에 해당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쉽게 읽어 갈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즐겁게 읽은 책이며 이 책으로 인해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다른 책들도 접하게 되었고 또한 즐겁게 읽고 있다. 저자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와 신학 박사 학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도킨스의 신>은 분자생물학 박사인 저자가 무신론자이면서 동시에 진화생물학의 대가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은 책이다. 조만간 끝내기를 기대한다.